푸코가 덱스터를 만났을 때

  살아가면서 쌓여진 나의 지적 테두리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을 고르라면 나는 미셀 푸코를 주저하지 않고 꼽을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배운 '감시와 처벌'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위대한 책이다. 내가 어떻게 감시를 피하면서 살 수 있는지, 또한 반대로 내가 어떻게 상대방들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와 함께 배운 포스트 모더니즘은 나의 외골수적인 반항심과 맞물려 아버지와 같은 담론에게 조롱하고 장난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푸코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보자. 누구나 그러하듯이 푸코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의 이론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에이즈가 처음 퍼지던 시기에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이였다. 그는 사회적으로 반 동성애적인 분위기에 맞물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는데 정신병원의 생활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동성애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유되어야 할 환자 취급을 받게 되었고, 병원은 인간이 가진 욕망 중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것들을 금지시키고, 사회가 허용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들로 정화되도록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동성애적인 욕망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알게되어 그를 신고할 경우 다시 정신병원에 갇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숨막히는 구조 속에서 사회 시스템이 구성원들을 어떻게 감시를 하고 처벌을 하는지에 대해 고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혁명 이전 앙시앵 레짐이라는 체제 하에선 왕이라는 강력한 권력 아래 반 사회적인 행동을 했을 경우, 그것은 왕의 이름으로, 왕의 소유권을 침해한 대가로서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그가 보는 앞에서 태우고 난 뒤 그도 화형에 처하는 방법이라던가 여러가지 잔혹한 방법을 실행했었고 그것을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행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중들에게도 한편으로는 경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권력자들은 대중들에게 공포를 보여줌으로서 그들이 함부로 반사회적인 행동 -그것은 도둑질, 살인등에서부터 반란까지 포함된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꼭꼭 숨어서 혁명을 일으켰고 최고 권력자인 왕의 목을 잘랐다. 공포로는 더 이상 권력을 지킬 수 없었고 사회 통제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혁명 이후 시스템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체제 변환을 하게 된다. 변화된 근대 시스템의 특징은 권력은 왕이라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미시화되면서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숨으면서 반 사회적인 인물들은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 왕의 목을 자름으로서 체제가 끝난 것을 본 이후 어느 한 사람으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게 함으로서 반란이 일어나도 사회가 또다시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런 가능성을 가진 민주화나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거리로 나올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감시가 좀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공포로서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머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고 군대에서 재교육을 한다. 그럼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교도소나 병원에서 재교육을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듯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욕망, 우리의 의사에 따라 고르는 선택이 사실은 시스템의 통제 아래에서 한정된 그리고 만들어진 선택을 할 뿐이다. 동시에 개인들의 선택이 말썽의 여지가 없도록 철저한 감시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파놉티콘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컴퓨터로 반 사회적인 행동을 하자 스미스가 와처 그에게 압력을 가한다. 이렇게 권력은 혁명 이전보다 훨씬 세밀하고 정교하게 우리들의 삶에 침투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욕망이라는 건 평등한 것이다. 사람들은 제 각각의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사실 귀하고 천한 것은 없다. 다만 사회가 귀한 것과 천한 것,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살인은 보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신을 모욕하는 자를 죽이는 건 정당화되었고,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살인 역시 정당화되었다. 조선 시대에서는 바람 피는 아내를 죽이는 건 정당화되었지만 바람핀 남편을 아내가 죽이는 건 정당화 되지 못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없는 자가 먹고 살기 위해 빵을 훔치는 장발장식 도둑질은 정당화되지 않지만 그런 자가 간절하게 호소를 하는 것을 거부하여 그들이 죽도록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이름 아래 정당화 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을 가진 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행해진 폭력과 살인은 정당화되었지만 약자가 권력을 가진 이에게 반기를 가했을 땐 정당화되지 못한건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이루어져왔다. 이처럼 시대와 공간에 따라 욕망들은 옳고 그른 것이 갈려져왔고 절대적인 판단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 '덱스터'의 주인공인 덱스터는 이러한 사회에서 사회가 허용되지 않는 욕망, 사람을 살인하는 욕망을 가진 자이다. 반사회적인 이들을 잡아내는 경찰인 아버지 해리는 어릴 때 그런 그의 본능을 보고서 사회의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나쁜 이들을 죽이라는 조건 아래 그가 전기의자에 앉지 않고 살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덱스터는 아버지를 이어서 범죄 현장에서 혈흔을 분석하여 범죄자들을 찾는 경찰이 되었고 동시에 그의 욕망에 따라 살인을 죽인다. 단 범죄자들을. 반 사회적인 이들에 대하 감시를 하는 주체이자 감시를 피해야 하며, 반사회적인 이들을 잡아내 살인을 하는 그는 푸코가 발견한 근대 시스템의 특징들이 모두 모여 커다란 모순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사회의 감시와 처벌를 하는 위치에서 감시와 처벌을 교모하게 피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반사회적인 욕망을 이뤄내는 모순적인 위치에 서있다.

 
그의 눈에서 본 사람들은 어떠할까. 제각기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즐기고 또한 그 욕망을 이루지 못했을 땐 고통받는 것을 목격한다. 어떤 이들은 남들 눈을 피해 바람을 피우고, 어떤 이들은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경찰이라는 힘든 직업 때문에 이혼을 요구받아 괴로워하는 것들을 본다. 또한 어떤 이들은 범죄자들을 찾아내는 것에 광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제각각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예를 들어 범죄자들을 찾는 것을 즐기는 욕망과 같이 사회적으로 허락된 것을 즐기는 자는 정의로운자로, 사회적으로 허락받지 않는 욕망을 즐기다 사회의 눈에 발견된 것을 보는 자들은 나쁜놈, 나쁜년으로 취급받고 그 댓가를 받는다. 

 덱스터는 처음에는 살인이라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즐기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깨닫게 된 순간을 만난다. 그 순간 그동안 욕망을 통제해왔던 룰에서 벗어나라는 강력한 유혹을 받는다(시즌1). 그리고 욕망의 원인을 깨닫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에게 룰을 만들어준 아버지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또한 아버지 역시도 자신을 완전히 허용하지 못했음을 알게되면서 아버지가 만든 통제의 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가게 된다(시즌 2). 아버지에게 벗어나 자신이 만든 룰에는 부족한 무언가 때문에 실패점도 보인다(시즌 3).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점점 어떻게 인생 살아가야하는지 깨달아 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덱스터의 사회화가 이뤄진다. 하지만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가족이라던가 재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생에 대한 짐들은 점점 무거워지고 숨을 조여온다. 그 짐이 너무나 무거워 자신들의 가족을 살인하는 이들도 보는 한편 가족 앞에서는 다정한 남편과 멋진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밤에는 너무나 잔인한 살인을 하는 이들도 보게 된다. 자신과 똑같은 욕망을 가진 이들을 보게 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소중한 존재들을 건드리게 되면서 그들을 허용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모순점을 다 가지고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덱스터는 우리의 삶과도 연결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벌고, 좋은 남편 이쁜 마누라를 얻어서, 자이나 타워팰리스 같은 좋은 집에 들어가, 자녀들을 명문대로 보내서 좋은 사람과 결혼시킨다는 사회가 만들어 둔 욕망의 구조 속에 포함되지 않는,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욕망들,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것을 말한 순간 미친놈으로 낙인찍혀 버리는 욕망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푸코와 같이 동성애일 수도 있고 덱스터와 같이 살인일 수도 있으며, 그 외에 다른 어떤 욕망일 수도 있다. 덱스터 식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당신의 어둠의 동반자이다. 당신과 함께 인생의 끝까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치며 당신을 괴롭히며 당신을 만들어가는 어둠의 동반자(Dark Passenger)이다. 그것이 어떠하든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사회가 만들어 둔 정교하고 세밀한 감시에서 벗어나 어떻게 풀 것인가. 또한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서 휼륭한 사람이 되면서도 이러한 욕망을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온 당신은 어떠한가. 덱스터의 한 대목을 소개시켜주며 긴 글을 끝낸다.

"자 얘기해봐요. 당신 대체 얼마나 개자식이에요? 거기서 연기가 장난이 아니던데요. 거기서 연기가 장난이 아니던데요 그런 연기는 어디서 배웠나요? 중독자 닷컴?"
"이봐요. 제가 왜 거짓말 하겠어요?"
"아뇨. 완전 거짓말쟁이면서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죠."
"제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군요."
"거야 모르죠. Bob"
"어차피 익명이잖아요."
"거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살아온 것보다 훨씬 더 극악한 삶을 보고 듣고 겪어왔다구요."
"그건 동의 못하겠는데요."
"오. 그럼 당신은 완전 약에 쩔었다?"
"제 말은 당신이 겪은 힘든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당신이 겪은 일을 제게 말해주겠단 말도 아니죠? 전 그런 욕구는 상상도 못하겠네요. 수천개의 숨겨진 목소리가 속삭이는 거죠. '이게 바로 너야'. 그러면 당신은 압박감과 싸우게 되고 서서히 일어나는 욕구가 파도처럼 당신을 집어삼키면 먹이를 달라고 당신을 쿡쿡 찌르고 얼얼하게 쑤셔되며 괴롭히는 거죠. 하지만 속삭임은 점점 커져만가고 그러다가 '지금이야'라고 소리를 질러요. 그 목소리는 오직 당신만이 들을 수 있고 당신만이 듣길 원하고 당신은 거기에 사로잡혀 있어요. 당신의 그림자에.."
"어둠의 동반자(Dark Passenger)"
"예... 당신의 어둠의 동반자(Dark Passenger)"

by Contender | 2009/11/01 13:11 | The FILM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contender.egloos.com/tb/246763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