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der's Life

contender.egloos.com

포토로그


트위터



아르민 - 기억 속의 상처 The FILM


 소설가 이청준은 소설은 독자와의 싸움이고 게임이라고 했다. 작가는 패를 끝까지 숨기고 독자와의 게임을 벌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포함이 될 것이다. 영화 '아르민'은 독자와의 싸움에서 과연 승리했을까? 감독이 숨겼던 패는 무엇일까? 영화의 주인공은 아르민과 그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들을 영화 오디션에 캐스팅 시키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보스니아에서 독일까지 온다. 너무나 볼품없어 보이는데다가 거의 언제나 무표정인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고 멋진 자식일뿐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코디언을 연주할 수 있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내전으로 얼룩지고 가난한 나라 보스니아 인들에게 부유한 독일은 동경의 대상이다. 아버지는 깨끗한 호텔 화장실조차도 신기할 뿐이다. 영화 오디션을 보기 위해 온 그들에게 영화사는 값비싼 호텔방을 제공해주고 호텔 바깥에는 멋진 옷들과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아버지는 소중한 아들에게 이런 걸 사주고 싶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지갑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완전히 거절할 수 없어 햄버거를 사 먹는다.

 밤에는 아들의 오디션 합격을 위해 바로 달려가 영화인들에게 비싼 술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에게 측은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들은 조금 이상하다. 거의 말도 없는데다가 감정을 보기 어려운 무표정을 시종일관 짓고 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비해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딘지 모르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아들은 먹어야 하는 약도 있지만 먹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영화 오디션에 합격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이 오디션에 합격할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르민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사진 기사가 웃으라고 할 때도 제대로 웃지를 못한다. 기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결국 그의 프로필 사진마저도 무표정이다. 그는 과연 영화 오디션에 붙을 수 있을까? 아르민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받은 대사를 보니 영화 내용은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은 이런 전쟁 이야기에 투덜거리지만 아버지는 보스니아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오디션도 제대로 못보고 떨어진다. 아르민과 아버지는 낙심하고 아르민은 화장실 안에 틀혀박혀만 있다. 아버지는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다음날 감독에게 무작정 찾아가 아르민의 아코디언 연주 실력을 설명하면서 아들의 오디션을 얻어냈다. 이렇게 어렵게 온 오디션이지만 아들은 감독 앞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다가 기절을 하고만다. 다음날 보스니아로 돌아갈려고 하는데 감독이 그들을 붙잡는다. 감독은 보스니아 전쟁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데 아르민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서 계약서를 내민다. 하지만 이들은 이 것을 거부하고 보스니아로 돌아가고 만다. 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아르민이 영화 오디션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아르민이 우여곡절 끝에 영화 오디션에 붙고 보스니아 내전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나의 예상과 너무나 빗나갔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영화는 과연 독자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일까? 아니면 진 것일까?

 우리들은 누구나 비밀을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이 비밀을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밀을 함부로 말했을 시의 결과가 두렵고 결국 그 비밀은 마음 속에 간직한채 살아간다. 상처 역시 그렇다. 사랑이 만들어 낸 상처, 사람이 준 상처, 가족이 준 상처는 우리 가슴 속에 간직된채 살아간다. 그 상처는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그 상처는 흉터로 남아 그 것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아르민과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전쟁은 그 무엇보다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우며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것이다. 이들은 이 상처를 벗어버리고 싶고 한편으로는 말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동시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면 간신히 아문 상처가 다시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나 큰 아르민은 그 상처를 잊기 위해 감정을 잊어버린거 같다.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가 아니였을까? 그 상처 때문에 아르민은 언제나 어디론가 숨고 싶다. 문을 잠그고 외딴 방에 있고 싶어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

 아르민이 오디션을 보려고 한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고 있었고 그것은 그런 상처를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를 하라고 한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 대본을 가지고 연습을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영화가 말하는 보스니아 내전과 자신들의 기억과 상처 속에 있는 보스니아 내전을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영화의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는 더이상 그들 이야기이면서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로 좋은 호텔 방을 제공하는 독일은 좋은 나라다. 하지만 감독이 다큐멘타리를 찍고 싶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을 때는 이제 정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야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렵게 아물어가고 있는 그 상처를 다시 열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계약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부한다. 영화 배우는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행동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아르민은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행동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거부한다. 사진사가 행복을 떠오르라고 했을 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독일의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세계지도를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하고 담배를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거부는 그를 아프게 하고 그가 약을 먹어야지 살 수 있게 만든다.

 계약을 거부하고 돌아가기 전 아르민이 화장실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잘 했냐고 물어보는 아들의 질문은 그가 가진 병의 증상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스니아로 돌아간다. 세계 지도를 보면서 중국의 크기를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외부로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다시 내부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들의 운명은 슬프기 그지 없다.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의 상처를 이렇게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간접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이 다시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지식들을 이용해 그 의미의 해석을 찾게 만든다. 그리고 독자들이 의미의 해석을 찾아내었을 때 가지는 감정은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충분히 해석을 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스니아와 한국의 거리는 너무나 멀기 때문에 한국의 관객들은 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채 영화의 엔딩을 보고 떠나버린다. 나 역시도 지금도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어떻게 영화를 봐야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 많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도 아르민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지낸 전쟁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벽이 되어 그를 내부에 가두었다. 보스니아가 아닌 독일이라는 바깥 세상에서도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좀 더 외부로 가면 그 벽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외부로 갈 수 없다. 그들은 다시 보스니아로 되돌아 가야한다. 우리들 역시 아르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가진 제각각의 상처는 그들을 그들의 자리에서만 머물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에 남들이 들어오거나 보지 못하도록 한다. 때론 어떤 이들은 그 것을 완전히 부숴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안에서 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적당한 타협을 이루기도 한다. 아르민은 앞으로도 그 상처를 극복하기는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르민이 그 상처를 극복해주었으면 한다. 아르민이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도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덧글

  • 김수진 2012/06/17 19:21 # 삭제 답글

    영화 아르민이 보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들어왔는데요..아르민 영호ㅏ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막막하네요..

    혹시 아르민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아실까 싶어 댓글 남기고 갑니다..^^
댓글 입력 영역